개인적으로 이번 연수에서 제일 기대했던 날이 밝았다. 연수 넷째날 오후 바로, 영국 런던의 국립사회적처방아카데미(#NASP)를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오전부터 신나게 참여한 건축 투어에서 이미 2만보 넘게 찍었던 터라 체력은 이미 방전상태...
정신을 추스리며, 사우스뱅크센터 지하에 위치한 NASP를 찾았다. 사무실은 아이디카드를 찍고 들어가야하는 건물 구조로 베어 워커(Beatrice Walker) 매니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테이블에는 과일과 비스켓, 유리병에 든 물이 세팅되어 있었다.
바로 이어진 프리젠테이션. 미팅에는 커뮤니케이션 담당 오드리 브리그스(Audrey Briggs)가 함께했다. 직원이 50명쯤 되지만 대부분 재택으로 일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어 행사나 회의가 있을 때만 모인다고 설명했다.
(#아산나눔재단 15기 3조인 우리 굿핸즈클럽은 민주(사회적벤처기업 제니들), 새롬(사회적기업 백년숲, 울산), 상민(한마음한몸), 희경(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원민(서울시자원봉사센터) 다섯 명이 자리했다.)
9월 16일(수) 오후 3시에 시작해 100분이 조금 넘게 이어진 간담회였다.
우리가 밝힌 방문 목적은 분명했다. 한국의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약 954만명, 인구의 18.6%로 이들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이전 세대보다 근로 의지가 강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리는 이들을 '비경제적 취약층이 아닌 전문직 은퇴자'로 보고, 지역의 새로운 역할 경로로서 일명 남자들의 작업장 멘즈셰드(Men's Shed)를 주목하게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멘즈셰드가 사회적 처방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성 건강, 특히 은퇴 남성에게 이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묻고 싶었다.
왜 영국은 이 길을 택했나
워커의 발표는 통계에서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진료 예약 네 건 중 한 건이 순전히 사회적 이유 때문이고, 응급 입원 네 건 중 한 건에는 약물 부작용이 얽혀 있다.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워커는 이것이 삶의 질 문제이자 보건체계에 가해지는 압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이 지역에서도 외로움과 고립이 큰 화두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에서 사회적처방이 제도로 올라선 결정적 계기는 2018년 정부의 외로움 전략이었다. 당시 총리가 "의학적 처방만으로는 외로움의 근본 원인을 다룰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듬해인 2019년 NHS 장기계획에 포함되면서 잉글랜드에서 GP에 등록된 모든 사람이 사회적처방 링크워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워커는 이를 두고 어떤 국가 보건체계도 한 적 없는 규모의 투자였다고 표현했다. NASP 자신도 그 해에 정부가 설립한 자선단체다. 제도는 만들었는데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한 가지가 특히 인상 깊었다. 사회적처방 제공이 GP의 계약상 의무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워커는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권장이 아니라 계약이었다.
체제의 중심, 링크워커
체계의 중심에는 링크워커가 있다. 워커의 표현으로는 "마법이 일어나는 자리"다. 잉글랜드의 GP는 한 사람당 10분을 쓰지만, 링크워커는 한 회기에 한 시간을 쓰고 최대 12회기까지 만날 수 있다. 보통은 3개월에 걸쳐 6~12회를 만난다. 첫 질문은 "무엇이 문제입니까"가 아니라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다. 그리고 활동 계획은 링크워커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만든다.
자격 요건은 없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경력자가 많지만 공식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고, 공감 능력, 경청, 적극성, 안전보호(safeguarding) 관리 역량이 핵심이라고 했다. 대신 채용 후 의무 교육이 있다. 다만 NHS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의 수준이 일정하지 않아, NASP가 직접 링크워커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카데미'라는 이름이 사실 조금 어색하다며 웃던 워커가, 이제는 정말 아카데미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대목이다.
가장 눈여겨본 것은 근무시간의 20%를 지역사회 개발에 쓰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는 전국 단위 활동 목록이 없다. 워커는 그런 목록은 작동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활동 대부분이 너무 지역적이고 작으며, 여든 살 자원봉사자가 매주 화요일에 여는 뜨개질 모임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크워커가 직접 동네를 돌며 자기만의 목록을 만든다. 누가 운영하는지, 교통편이 있는지까지 안다. 의뢰의 성패가 거기서 갈린다.
연결 방식도 세심했다. 링크워커는 의뢰만 하고 끝내지 않고 첫 회에는 대개 함께 가서 머문다. 이를 '따뜻한 인계(warm handover)'라고 부른다. 안 나온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어 왜 못 갔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도우면 되는지 묻는다.
동시에 현실적 어려움도 솔직히 토로했다. 연간 250명이 이상적인 담당 건수인데 현실은 그 두 배가 넘고, 그 때문에 이직률이 문제다. GP의 부담을 덜려고 만든 자리가 다른 곳에 부담을 옮긴 셈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링크워커 전용으로 묶여 있던 예산이 다른 직군에도 쓸 수 있게 풀리면서, 일차의료 링크워커 수는 3,30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지역사회 쪽에는 3,000명 안팎이 더 있을 것으로 보지만 정확한 수는 아무도 모른다.
증명의 문제
물론 영국이 쌓아 온 근거는 만만치 않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GP를 통한 의뢰가 560만 건이었고, GP의 97%가 사회적처방에 우호적이다. 반면 일반 시민 중 이 용어를 이해하는 비율은 24%에 그친다. 응답 410만 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자신감, 지역 서비스로부터 받는 지지감, 진료 경험, 정신건강 필요가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1파운드당 9파운드의 웰빙 편익이라는 사회적투자수익률 수치도 제시됐다. GP 방문과 입원, 응급실 이용이 줄었고, 특히 고빈도 이용자에게서 감소 폭이 컸다.
왜 이렇게까지 증명에 매달리는지는 명확했다. 링크워커 인건비를 NHS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보건체계에 시간과 비용을 아껴 준다는 것을 보여 주지 못하면 재정이 끊긴다. 그럼에도 임상의들은 "근거는 있지만 무작위대조시험(RCT)만큼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진행 중인 두 연구가 중요하다. 하나는 베를린의 연구대학이 조율하는 EU 프로젝트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사회적처방이 효과적인지를 8개국에서 검증하는 5년짜리 RCT다. 11개국 22개 파트너, 예산 700만 유로 규모이며 현재 2년차다. 다른 하나는 이미 끝난 그리스의 예술처방 RCT다.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 정신질환자 1만 명을 지역사회 예술 활동에 연계했고,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 결과 그리스의 모든 정신과 의사가 지역 예술 활동을 처방할 수 있게 법이 바뀌었다. 워커는 이 이야기를 하며 눈에 띄게 들떠 있었다.
남성에게 닿는 법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대목이다. 통계상 사회적 처방 이용자는 여성이 확연히 많고, 그래서 남성을 끌어들이려는 프로그램이 따로 운영된다.
2025년 12월 정부가 잉글랜드 최초의 남성건강전략을 발표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약속이 담겼고, 특히 위험이 높으면서도 기존 보건서비스를 가장 이용하지 않는 집단을 겨냥한다고 명시했다.
실행 경로로 소개된 것은 역시 축구였다. 그들은 이를 '배지의 힘'이라 불렀다. 첼시FC 치매 카페, 첼시FC 노래 모임처럼 축구와 아무 상관 없는 활동이라도 클럽의 배지가 붙으면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다. 50년을 그 클럽과 함께 자란 사람에게 클럽은 신뢰 그 자체다. 종교 기관과 같은 원리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최근 NASP가 신앙 부문 전담 인력을 두고 굿페이스파트너십과 전략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가 정신건강을 이야기하면 문턱이 낮아진다는 말도 덧붙었다.
그리고 에이징 베터 인캠던(Ageing Better in Camden)의 연구. 워커가 "오늘 마침 찾아서 넣었다"며 보여 준 슬라이드였는데, 우리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자료였다. 노년 남성들은 펍, 카페, 공원, 도서관 같은 중립적 공간을 선호했고, 커뮤니티센터는 '나를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느꼈다. "남성 클럽"처럼 공식적으로 홍보되면 가지 않았지만 "같이 걷고 이야기하기" 정도면 편안해했다. 매주 몇 시에 와야 하는 방식보다 펍에 들르듯 필요할 때 들르는 방식을 원했다. 수영 후 탈의실에서 나누는 대화, 임대주택에서 책을 돌려 보는 일 같은 비공식적 접점이 실제 연결의 통로였다.
세계로 넓어지는 판
NASP는 올해 WHO 사회적처방 정책·개발 협력센터로 지정됐다. 영국 자선단체로는 유일하고, 이 분야 협력센터는 싱가포르에 하나가 더 있을 뿐이다. 지금은 디지털 준비도 툴킷과 '성숙도 매트릭스(maturity matrix)' 같은 도구를 만들고 있다. 각국이 자국 보건체계에서 사회적처방을 어느 단계까지 실행할 수 있는지 진단하는 틀이다. 내년에 공개된다고 했다.
국제사회적처방협력체(ISPC)는 40여 개국, 100명 넘는 회원을 둔 가장 큰 네트워크다. 흥미로운 것은 운영 방식이다. NASP가 사무국을 맡지만 소유하지는 않으며, 회의 의장은 매번 다른 나라 사람이 맡는다. 우리가 방문한 그날 오후 1시 회의는 말레이시아 교수가 진행했고 35명이 접속했다고 한다. 예산은 한 푼도 없다. 그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EU의 RCT도 이 네트워크에서 시작됐다.
올해 초 교토대학이 주최한 국제 사회적처방 컨퍼런스에 NASP 측 의사가 참석했고, 『Social Prescribing Around the World』는 32개국 현황을 담았지만 2023년에 쓰여 이미 낡았다며 올해 안에 개정판이 나온다고 했다. 나라마다 이름은 다르다. 영국은 링크워커, 캐나다와 호주는 커뮤니티 커넥터, 네덜란드는 웰빙 코치, 인도는 ASHA 워커다. 워커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기능은 같고, 지역 맥락에 맞아야 하므로 다양성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던진 질문들
나는 가장 궁금했던 사회적처방과 사례관리의 차이를 물었다. 워커의 답은 이랬다. 사회복지는 안전보호(safeguarding)에 무게가 있고 사회적처방은 건강과 웰빙에 무게가 있다. 사회적처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이나 녹색 활동 같은 지역 모임으로 연결한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덧붙였다. 현실에서는 링크워커의 일과 사회복지사의 일이 바라는 것보다 훨씬 많이 겹치며, 이는 영국 복지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의뢰가 가장 많은 순서는 정신건강, 재정, 진로, 연령 관련 활동이고, 신앙과 문화유산, 예술은 맨 뒤다. 기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님은 자격 없는 링크워커가 맞지 않는 활동에 사람을 보내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답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특정 질환에 특정 활동이 좋다는 식의 매칭은 하지 않는다. 자연 활동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연구가 있어도 그것을 근거로 의뢰하지는 않는다. 기준은 오직 그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다. 둘째, 문제는 오히려 받는 쪽의 역량이다. 중등도 이상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소규모 모임에 보내지 않도록, 지역사회 조직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많은 자원을 쓴다고 했다.
새롬님은 산림복지센터를 보건체계에 편입시키려 해도 보건 당국이 산림 쪽 데이터를 인정하지 않아 어렵다는 문제를 꺼냈다. 워커는 같은 질문을 늘 받는다고 했다. 그의 답은 의외로 소박했다. 전국 단위로는 풀리지 않고 지역에서 풀어야 한다. 동네 GP 진료소에 연락해 링크워커가 누구인지 묻고, 연락처를 받아 직접 연락하고, 커피 한 잔 하자고 초대해 현장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링크워커가 그 활동의 힘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설득이며, 여기에 평가 결과를 함께 보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은 생각
첫째, 링크워커가 자기 동네 목록을 직접 만든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자원 발굴이 부수 업무가 아니라 업무의 5분의 1로 명시되어 있는 셈이다. 방학마음건강살림 2차년도에 "사례 발굴보다 지역자원 개발 우선"이라는 자문 의견을 받았는데, 그것을 선언이 아니라 업무분장의 시간 비율로 못 박을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다.
둘째, 의뢰 주체를 넓히는 방향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길이다. 스페인은 접수 담당자를 포함해 일차의료 종사자 누구나 의뢰할 수 있고, 포르투갈은 새 직군을 만드는 대신 기존 사회복지사를 역량 강화해 그 역할을 맡겼다. 영국이 새 직군을 만든 것은 사회복지사에게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에 여력이 있느냐에 따라 설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다만 워커는 GP 진료소 안에 있다는 사실이 링크워커에게 권위와 신뢰를 부여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지역사회 쪽에 두면 문턱은 낮아지지만 보건과의 연결이 약해진다. 우리가 사회복지사의 링크워커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면, 낮아진 문턱만큼 의료진에게 결과를 돌려보내는 고리를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셋째, 남성에게 가닿는 문제에서 영국도 뽀족한 답을 다 찾지는 못한 듯하다. 캐나다처럼 링크워커가 커뮤니티센터에 있어도 남성이 그 센터에 오지 않는 문제는 그대로라고 워커 스스로 말했다. 다만 배지의 힘과 캠던의 연구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공식 프로그램으로 유도하지 말고, 이미 그들이 신뢰하는 간판과 이미 그들이 머무는 자리를 빌리라는 것이다. 멘즈테이블이 복지관 밖 공간을 쓰고 '남성 모임'을 내세우지 않기로 한 판단은 이 근거와 맞닿아 있다. 반대로 단계가 정해진 정식 프로그램은 캠던이 한계로 지적한 방식에 가깝다는 점도 함께 새겨야 한다.
넷째, 증명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같은 모양이다. 보건 쪽이 인정하는 형식의 데이터가 없으면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영국도 그 벽 앞에서 RCT(무작위대조군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들이 먼저 한 일은 큰 연구가 아니라, 링크워커에게 활동의 가치를 직접 경험하게 하고 평가 결과를 손에 들려 보낸 일이었다. 보건소, 의사회등 보건의료 영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다음에 할 일도 그쪽에 가까울 것이다.
영국, 사회적 처방과의 조우
개인적으로 이번 연수에서 제일 기대했던 날이 밝았다. 연수 넷째날 오후 바로, 영국 런던의 국립사회적처방아카데미(#NASP)를 방문한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오전부터 신나게 참여한 건축 투어에서 이미 2만보 넘게 찍었던 터라 체력은 이미 방전상태...
정신을 추스리며, 사우스뱅크센터 지하에 위치한 NASP를 찾았다. 사무실은 아이디카드를 찍고 들어가야하는 건물 구조로 베어 워커(Beatrice Walker) 매니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테이블에는 과일과 비스켓, 유리병에 든 물이 세팅되어 있었다.
바로 이어진 프리젠테이션. 미팅에는 커뮤니케이션 담당 오드리 브리그스(Audrey Briggs)가 함께했다. 직원이 50명쯤 되지만 대부분 재택으로 일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어 행사나 회의가 있을 때만 모인다고 설명했다.
(#아산나눔재단 15기 3조인 우리 굿핸즈클럽은 민주(사회적벤처기업 제니들), 새롬(사회적기업 백년숲, 울산), 상민(한마음한몸), 희경(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원민(서울시자원봉사센터) 다섯 명이 자리했다.)
9월 16일(수) 오후 3시에 시작해 100분이 조금 넘게 이어진 간담회였다.
우리가 밝힌 방문 목적은 분명했다. 한국의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약 954만명, 인구의 18.6%로 이들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이전 세대보다 근로 의지가 강하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우리는 이들을 '비경제적 취약층이 아닌 전문직 은퇴자'로 보고, 지역의 새로운 역할 경로로서 일명 남자들의 작업장 멘즈셰드(Men's Shed)를 주목하게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멘즈셰드가 사회적 처방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성 건강, 특히 은퇴 남성에게 이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묻고 싶었다.
왜 영국은 이 길을 택했나
워커의 발표는 통계에서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진료 예약 네 건 중 한 건이 순전히 사회적 이유 때문이고, 응급 입원 네 건 중 한 건에는 약물 부작용이 얽혀 있다.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수명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워커는 이것이 삶의 질 문제이자 보건체계에 가해지는 압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이 지역에서도 외로움과 고립이 큰 화두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에서 사회적처방이 제도로 올라선 결정적 계기는 2018년 정부의 외로움 전략이었다. 당시 총리가 "의학적 처방만으로는 외로움의 근본 원인을 다룰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고, 이듬해인 2019년 NHS 장기계획에 포함되면서 잉글랜드에서 GP에 등록된 모든 사람이 사회적처방 링크워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워커는 이를 두고 어떤 국가 보건체계도 한 적 없는 규모의 투자였다고 표현했다. NASP 자신도 그 해에 정부가 설립한 자선단체다. 제도는 만들었는데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한 가지가 특히 인상 깊었다. 사회적처방 제공이 GP의 계약상 의무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워커는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적으로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권장이 아니라 계약이었다.
체제의 중심, 링크워커
체계의 중심에는 링크워커가 있다. 워커의 표현으로는 "마법이 일어나는 자리"다. 잉글랜드의 GP는 한 사람당 10분을 쓰지만, 링크워커는 한 회기에 한 시간을 쓰고 최대 12회기까지 만날 수 있다. 보통은 3개월에 걸쳐 6~12회를 만난다. 첫 질문은 "무엇이 문제입니까"가 아니라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다. 그리고 활동 계획은 링크워커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만든다.
자격 요건은 없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경력자가 많지만 공식 자격증은 필요하지 않고, 공감 능력, 경청, 적극성, 안전보호(safeguarding) 관리 역량이 핵심이라고 했다. 대신 채용 후 의무 교육이 있다. 다만 NHS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의 수준이 일정하지 않아, NASP가 직접 링크워커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카데미'라는 이름이 사실 조금 어색하다며 웃던 워커가, 이제는 정말 아카데미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대목이다.
가장 눈여겨본 것은 근무시간의 20%를 지역사회 개발에 쓰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국에는 전국 단위 활동 목록이 없다. 워커는 그런 목록은 작동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활동 대부분이 너무 지역적이고 작으며, 여든 살 자원봉사자가 매주 화요일에 여는 뜨개질 모임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크워커가 직접 동네를 돌며 자기만의 목록을 만든다. 누가 운영하는지, 교통편이 있는지까지 안다. 의뢰의 성패가 거기서 갈린다.
연결 방식도 세심했다. 링크워커는 의뢰만 하고 끝내지 않고 첫 회에는 대개 함께 가서 머문다. 이를 '따뜻한 인계(warm handover)'라고 부른다. 안 나온 사람에게는 전화를 걸어 왜 못 갔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도우면 되는지 묻는다.
동시에 현실적 어려움도 솔직히 토로했다. 연간 250명이 이상적인 담당 건수인데 현실은 그 두 배가 넘고, 그 때문에 이직률이 문제다. GP의 부담을 덜려고 만든 자리가 다른 곳에 부담을 옮긴 셈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링크워커 전용으로 묶여 있던 예산이 다른 직군에도 쓸 수 있게 풀리면서, 일차의료 링크워커 수는 3,300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지역사회 쪽에는 3,000명 안팎이 더 있을 것으로 보지만 정확한 수는 아무도 모른다.
증명의 문제
물론 영국이 쌓아 온 근거는 만만치 않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GP를 통한 의뢰가 560만 건이었고, GP의 97%가 사회적처방에 우호적이다. 반면 일반 시민 중 이 용어를 이해하는 비율은 24%에 그친다. 응답 410만 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자신감, 지역 서비스로부터 받는 지지감, 진료 경험, 정신건강 필요가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1파운드당 9파운드의 웰빙 편익이라는 사회적투자수익률 수치도 제시됐다. GP 방문과 입원, 응급실 이용이 줄었고, 특히 고빈도 이용자에게서 감소 폭이 컸다.
왜 이렇게까지 증명에 매달리는지는 명확했다. 링크워커 인건비를 NHS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보건체계에 시간과 비용을 아껴 준다는 것을 보여 주지 못하면 재정이 끊긴다. 그럼에도 임상의들은 "근거는 있지만 무작위대조시험(RCT)만큼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진행 중인 두 연구가 중요하다. 하나는 베를린의 연구대학이 조율하는 EU 프로젝트로,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사회적처방이 효과적인지를 8개국에서 검증하는 5년짜리 RCT다. 11개국 22개 파트너, 예산 700만 유로 규모이며 현재 2년차다. 다른 하나는 이미 끝난 그리스의 예술처방 RCT다.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 정신질환자 1만 명을 지역사회 예술 활동에 연계했고,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 결과 그리스의 모든 정신과 의사가 지역 예술 활동을 처방할 수 있게 법이 바뀌었다. 워커는 이 이야기를 하며 눈에 띄게 들떠 있었다.
남성에게 닿는 법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대목이다. 통계상 사회적 처방 이용자는 여성이 확연히 많고, 그래서 남성을 끌어들이려는 프로그램이 따로 운영된다.
2025년 12월 정부가 잉글랜드 최초의 남성건강전략을 발표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지역사회 기반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약속이 담겼고, 특히 위험이 높으면서도 기존 보건서비스를 가장 이용하지 않는 집단을 겨냥한다고 명시했다.
실행 경로로 소개된 것은 역시 축구였다. 그들은 이를 '배지의 힘'이라 불렀다. 첼시FC 치매 카페, 첼시FC 노래 모임처럼 축구와 아무 상관 없는 활동이라도 클럽의 배지가 붙으면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다. 50년을 그 클럽과 함께 자란 사람에게 클럽은 신뢰 그 자체다. 종교 기관과 같은 원리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최근 NASP가 신앙 부문 전담 인력을 두고 굿페이스파트너십과 전략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가 정신건강을 이야기하면 문턱이 낮아진다는 말도 덧붙었다.
그리고 에이징 베터 인캠던(Ageing Better in Camden)의 연구. 워커가 "오늘 마침 찾아서 넣었다"며 보여 준 슬라이드였는데, 우리에게는 가장 직접적인 자료였다. 노년 남성들은 펍, 카페, 공원, 도서관 같은 중립적 공간을 선호했고, 커뮤니티센터는 '나를 위한 곳이 아니다'라고 느꼈다. "남성 클럽"처럼 공식적으로 홍보되면 가지 않았지만 "같이 걷고 이야기하기" 정도면 편안해했다. 매주 몇 시에 와야 하는 방식보다 펍에 들르듯 필요할 때 들르는 방식을 원했다. 수영 후 탈의실에서 나누는 대화, 임대주택에서 책을 돌려 보는 일 같은 비공식적 접점이 실제 연결의 통로였다.
세계로 넓어지는 판
NASP는 올해 WHO 사회적처방 정책·개발 협력센터로 지정됐다. 영국 자선단체로는 유일하고, 이 분야 협력센터는 싱가포르에 하나가 더 있을 뿐이다. 지금은 디지털 준비도 툴킷과 '성숙도 매트릭스(maturity matrix)' 같은 도구를 만들고 있다. 각국이 자국 보건체계에서 사회적처방을 어느 단계까지 실행할 수 있는지 진단하는 틀이다. 내년에 공개된다고 했다.
국제사회적처방협력체(ISPC)는 40여 개국, 100명 넘는 회원을 둔 가장 큰 네트워크다. 흥미로운 것은 운영 방식이다. NASP가 사무국을 맡지만 소유하지는 않으며, 회의 의장은 매번 다른 나라 사람이 맡는다. 우리가 방문한 그날 오후 1시 회의는 말레이시아 교수가 진행했고 35명이 접속했다고 한다. 예산은 한 푼도 없다. 그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EU의 RCT도 이 네트워크에서 시작됐다.
올해 초 교토대학이 주최한 국제 사회적처방 컨퍼런스에 NASP 측 의사가 참석했고, 『Social Prescribing Around the World』는 32개국 현황을 담았지만 2023년에 쓰여 이미 낡았다며 올해 안에 개정판이 나온다고 했다. 나라마다 이름은 다르다. 영국은 링크워커, 캐나다와 호주는 커뮤니티 커넥터, 네덜란드는 웰빙 코치, 인도는 ASHA 워커다. 워커는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기능은 같고, 지역 맥락에 맞아야 하므로 다양성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던진 질문들
나는 가장 궁금했던 사회적처방과 사례관리의 차이를 물었다. 워커의 답은 이랬다. 사회복지는 안전보호(safeguarding)에 무게가 있고 사회적처방은 건강과 웰빙에 무게가 있다. 사회적처방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이나 녹색 활동 같은 지역 모임으로 연결한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덧붙였다. 현실에서는 링크워커의 일과 사회복지사의 일이 바라는 것보다 훨씬 많이 겹치며, 이는 영국 복지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의뢰가 가장 많은 순서는 정신건강, 재정, 진로, 연령 관련 활동이고, 신앙과 문화유산, 예술은 맨 뒤다. 기본적인 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님은 자격 없는 링크워커가 맞지 않는 활동에 사람을 보내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답변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특정 질환에 특정 활동이 좋다는 식의 매칭은 하지 않는다. 자연 활동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연구가 있어도 그것을 근거로 의뢰하지는 않는다. 기준은 오직 그 사람에게 무엇이 중요한가다. 둘째, 문제는 오히려 받는 쪽의 역량이다. 중등도 이상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된 소규모 모임에 보내지 않도록, 지역사회 조직의 역량을 키우는 일에 많은 자원을 쓴다고 했다.
새롬님은 산림복지센터를 보건체계에 편입시키려 해도 보건 당국이 산림 쪽 데이터를 인정하지 않아 어렵다는 문제를 꺼냈다. 워커는 같은 질문을 늘 받는다고 했다. 그의 답은 의외로 소박했다. 전국 단위로는 풀리지 않고 지역에서 풀어야 한다. 동네 GP 진료소에 연락해 링크워커가 누구인지 묻고, 연락처를 받아 직접 연락하고, 커피 한 잔 하자고 초대해 현장을 보여 주라는 것이다. 링크워커가 그 활동의 힘을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이 최선의 설득이며, 여기에 평가 결과를 함께 보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남은 생각
첫째, 링크워커가 자기 동네 목록을 직접 만든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자원 발굴이 부수 업무가 아니라 업무의 5분의 1로 명시되어 있는 셈이다. 방학마음건강살림 2차년도에 "사례 발굴보다 지역자원 개발 우선"이라는 자문 의견을 받았는데, 그것을 선언이 아니라 업무분장의 시간 비율로 못 박을 수 있다는 힌트를 얻었다.
둘째, 의뢰 주체를 넓히는 방향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길이다. 스페인은 접수 담당자를 포함해 일차의료 종사자 누구나 의뢰할 수 있고, 포르투갈은 새 직군을 만드는 대신 기존 사회복지사를 역량 강화해 그 역할을 맡겼다. 영국이 새 직군을 만든 것은 사회복지사에게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에 여력이 있느냐에 따라 설계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다만 워커는 GP 진료소 안에 있다는 사실이 링크워커에게 권위와 신뢰를 부여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지역사회 쪽에 두면 문턱은 낮아지지만 보건과의 연결이 약해진다. 우리가 사회복지사의 링크워커 역할을 강화하려 한다면, 낮아진 문턱만큼 의료진에게 결과를 돌려보내는 고리를 더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셋째, 남성에게 가닿는 문제에서 영국도 뽀족한 답을 다 찾지는 못한 듯하다. 캐나다처럼 링크워커가 커뮤니티센터에 있어도 남성이 그 센터에 오지 않는 문제는 그대로라고 워커 스스로 말했다. 다만 배지의 힘과 캠던의 연구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공식 프로그램으로 유도하지 말고, 이미 그들이 신뢰하는 간판과 이미 그들이 머무는 자리를 빌리라는 것이다. 멘즈테이블이 복지관 밖 공간을 쓰고 '남성 모임'을 내세우지 않기로 한 판단은 이 근거와 맞닿아 있다. 반대로 단계가 정해진 정식 프로그램은 캠던이 한계로 지적한 방식에 가깝다는 점도 함께 새겨야 한다.
넷째, 증명의 문제는 우리에게도 같은 모양이다. 보건 쪽이 인정하는 형식의 데이터가 없으면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영국도 그 벽 앞에서 RCT(무작위대조군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들이 먼저 한 일은 큰 연구가 아니라, 링크워커에게 활동의 가치를 직접 경험하게 하고 평가 결과를 손에 들려 보낸 일이었다. 보건소, 의사회등 보건의료 영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다음에 할 일도 그쪽에 가까울 것이다.
덧, 다음날 나는 개인시간을 활용하여 사회적처방의 효시라 알려진 브롬리 바이보센터에 다녀왔다. 혼자 지하철 타고 가는 길이 두렵기도 하고, 빗방울까지 떨어지니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안내데스크에 문의하니 오늘은 디렉터가 없다고 둘러보는 정도 할 수 있어 아쉽긴 했지만 왜 이 지역에서 더 건강 문제가 더 대두되었는지 짐작이 갔다. (영국에 사는 분이 우스개소리 왈, 아파도 정해진 병원 진료 순서를 기다리다가 낫거나 죽거나 한다나...)
런던 동부 타워햄리츠는 실업, 소득 박탈, 주거, 사회적 고립이 건강을 좌우하는 지역이다. (인종과 경제력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보기에도 런던 도심에서는 백인들이 대다수였다면, 브롬리에는 이슬람계와 흑인이 많아 보였다.
1984년 앤드류 모슨 목사와 교인들이 국가 서비스가 지역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보고 센터를 설립했다고 한다. 야외 공간도 운동장만한 잔디밭이 있을 정도로 넓었는데, 교회가 자기 건물을 NHS 일반진료에 제공해 GP 진료소를 커뮤니티 허브 안에 공동 배치한 것이 영국 최초 사례다. 바로 이 구조 덕분에 의료진이 링크워커를 통해 취업·기술·친구 만들기·운동·재정·주거 지원 등 센터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뢰 대상 서비스 상당수를 센터가 직접 제공한다는 점이 다른 GP 기반 모델과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근미래에) 병의원으로부터 복지관이 '의뢰 받는 쪽'이 되기 쉬운 구조이다. 브롬리바이보 사례는 오히려 복지관이 처방 가능한 자원(모임·활동·상담)을 먼저 두텁게 갖추는 것이 협력의 협상력이 된다는 근거로 쓸 수 있어 보인다. (폴레)